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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 1세대 Good Life, 그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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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 최명자,김성진,김은규, 박성근, 박달수, 이귀자 등 한자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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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 CCM 1세대로 찬양 사역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Good life(이하 굿라이프). 그들이 돌아왔다.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미, 최명자 사모와 김성진 간사 그리고 목회자 사모로 사역하는 이귀자 사모, 성형외과 원장으로 있는 박성근 집사, 로커로 활동했던 김은규 교수, 부산지구 대표로 사역하는 드러머 박달수 간사 등이 오래만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 ▲ 24년 만에 다시 만난 굿라이프 ? 뉴스파워 | | 70년대와 80년대 초반 전국을 찬양의 열기로 뜨겁게 달구었던 그들이 24년 만에 다시 뭉친 곳은 C.C.C. ‘Love Jeju' 여름수련회가 열린 제주도. 찬양예배, CCM이란 단어조차 없던 그 시절 굿라이프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영혼구원’이라는 사명을 품고 전국을 다니며 하나님께 예배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왔고 많은 영혼들이 주님을 더욱 뜨겁게 만났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굿라이프는 그 감동의 예배를 그대로 재현해 내며 많은 학생들의 마음을 울렸다. 멤버들은 20여 년 전, 그들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처럼 풋풋한 학생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향해 순수한 열정을 뿜어내던 그때를 회상했다. C.C.C. ‘Love Jeju' 셋째 날 저녁집회의 특별찬양 순서를 마친 굿라이프 멤버들은 오랜만에 모여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지금까지 선하게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하 인터뷰전문
| ▲ 80년 초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굿라이프 ? 뉴스파워 | | 굿라이프 사역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굿라이프는 70년대 당시 ‘영혼구원’을 위해 마음이 맞는 몇몇이 밴드를 구성해 찬양을 다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드럼도, 기타도 만져보지도 못한 실력으로 들어와서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죠. 심지어 믿음 없이 굿라이프 멤버로 들어와 함께 찬양을 하러 다니면서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 초, 굿라이프의 찬양예배가 전국적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당시에 굿라이프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소개해 주십시오. 굿라이프는 오직 ‘영혼구원’을 위해 찬양을 했습니다. 당시에 대학생들에게 문화적, 음악적 필요가 있었는데, 그 필요와 딱 맞았죠. 그래서 당시 찬양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변화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굿라이프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며 전국적으로 찬양예배를 다니기 시작했고 굿라이프의 예배가 있을 때면,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장소를 예배장소로 빌렸고 예배장소를 택시 기사도 알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예배 장소가 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눈물을 흘렸어요. 영접한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그 큰 강당의 3분의 2가 넘는 사람들이 손을 들었고 그 소리도 굉장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예배들을 드렸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예배는 어떤 예배였습니까? 모든 예배가 다 은혜였고 감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지시고 변화시키시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요.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예배가 있다면 소록도에서 드렸던 예배입니다. 환자들을 보면 몸도 불편한 사람들이 찬양을 하는 모습에 우리가 오히려 더 감동을 받았죠. 예배를 드리기 전에 누군가 예배당 앞에 종을 쳤어요. 그러자 토굴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예배당으로 모여들었어요. 나병 환자들로 가득 찬 예배당에는 누구하나 성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귀가 없고 눈도 없고 손도 다 뭉글어져 박수도 제대로 칠 수 없는 사람들이었죠. 그런 사람들이 찬양을 하며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나라와 민족과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고침 받고 예배가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 ▲ "하나님 앞에 진심과 전심으로 산다면 하나님의 때에 그에 대한 열매를 꼭 맺을 거예요." ? 뉴스파워 | | 굿라이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는 은혜들이 있었는데, 굿라이프가 멤버들 각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최명자 사모) 굿라이프는 대학생활에 있어서 빠트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처음에는 멤버로 들어가기 싫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성악을 전공했는데 성악과는 다른 음색을 내야하고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굿라이프와 보냈습니다. 예배 스케줄을 잡을 때도 시험보다 굿라이프 예배가 먼저였죠. 예배 스케줄 때문에 시험을 보지 못할 때는 재시험을 칠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학생시절을 굿라이프와 함께 보내며 삶의 확고한 목적과 방향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박성근 집사) 원래는 밴드를 들고 싶어 찾던 중 굿라이프를 알게 되었어요. 그 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었는데, 굿라이프 활동을 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의 반려자도 만났습니다. (이귀자 사모) 학생시절의 굿라이프 활동은 참 많은 것을 보게 하고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때는 학생이라 힘든 것 같고, 눈앞에 뭔가 보이지 않아 캄캄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굿라이프 사역을 통해 나에게 많은 은혜를 부어주셨고 그때의 수고와 헌신이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굿라이프 멤버들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신가요? 박달수 간사(부산지구 대표)와 김성진 간사(음악선교부 대표/ 듀엣 보배담은질그릇)는 지금까지 C.C.C. 간사의 삶을 살고 있고, 최명자 사모(시카고 강학수 간사 사모)와 최미 사모는 찬양사역자로 지금까지 4천회가 넘는 찬양사역을 했습니다. 최미 사모는 기독교TV에서 ‘내 영혼의 찬양’을 진행하고 있는 등 방송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로커였던 기타리스트 김은규 교수는 굿라이프 사역 이후 러시아에서 7년 동안 지휘공부를 하여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귀국하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건반을 맡았던 이대헌 집사는 MBC PD로 일하다 현재는 OBS 경인TV 객원연출과 갤러리 카페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기타리스트 박성근 집사는 대구의 요셉성형외과 원장이고 아내인 싱어 김은주 집사와 대구 성덕교회에서 찬양팀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음악선교부 간사를 역임한 싱어 이귀자 사모(원주 세인교회)도 남편 황규엽 목사와 함께 교회 개척 10년 만에 원주에서 가장 주목받는 교회로 성장시켰습니다. 이 외의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해주십시오.
굿라이프의 멤버들은 비록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그 시간을 하나님 앞에 최선으로 보냈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전심과 진심으로 살았을 때, 그 열매가 하나님의 때에 맺어진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어요. 굿라이프 멤버들에게는 야성이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끝까지 포기하지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 야성과 열정으로 무엇을 하든 잘 해내는 훈련이 된 것이죠.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이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습니다. 지금 취업난이다 청년실업이다 말이 많지만, 사실 사회에서도 쓸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정과 야성을 갖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때에 맞게 준비된 자로 귀하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 원문기사 주소 :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12160§ion=sc2§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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